다시 그려지게 된 흥남공업대학설계
주체37(1948)년 6월 4일 흥남비료공장(당시)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이날 시당위원장으로부터 흥남공업대학교사 건축설계도면에 대한 설명을 들으시던
시당위원장은 처음으로 큰 건축물을 설계한다는 기쁨을 안고 여러 나라의 기술서적들과 대학건물도안들을 보면서 현대적으로 한번 잘해보려고 있는 지혜와 재능을 다 바쳤다고 자랑스럽게 말씀드리였다.
사실 공장설계일군들이 조선사람들의 생활양식을 설계에 어떻게 반영하겠는가 하는데 대하여서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더 웅장하고 무게있어보이게 하겠는가 하는데 대해서만 신경을 쓰다나니 결국 건물이 멋없이 높고 둔중하며 침침하였던것이다.
방금까지 설계에 대한 자랑을 하던 일군들이 자책에 휩싸여있는데
남의것을 교조적으로 본따려고 한 설계의 또 하나의 약점에 대하여 지적해주신
설계로부터 모든 문제를 잘 타산하여야 한다. 건설로력과 자재를 적게 들이면서도 아담하고 쓸모있게 짓는 문제들이 다 설계에 많이 달려있다. 부속건물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기숙사는 교사로부터 좀 떨어진 곳에다가 문화위생적으로 꾸려야 한다. …
다른 나라의 이름난 대학교사건물까지 참고하였다는 설계의 부족점을 대번에 밝혀 그 극복방도까지 가르쳐주시는
흥남로동계급에게 마련해주는 대학을 철저히 우리 식으로, 만년대계의 건물로 일떠세우시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