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력사가 가장 오랜 대학-고려성균관
개성시에 있는 고려성균관은 고려 초엽에 세워지고 조선봉건왕조시기에 고쳐지은 우리 나라 봉건시대의 최고교육기관이였다. 원래 성균관은 고려 11대 문종왕이 대명궁이라는 별궁으로 건설한것이였다. 1087년에 국자감이 이곳으로 옮겨온 후부터 정식 교육기관으로 되였다. 국자감은 고려봉건국가의 최고교육기관으로서 교육의 목적은 봉건관리들을 양성하는데 있었다.
국자감(나라의 아들을 가르친다는 뜻)은 992년에 창설된 후 그 이름이 여러번 바뀌였다. 1275년에 국학으로, 1298년에는 성균감으로 고쳤다가 1308년부터 성균관으로, 그후 1356년에 다시 국자감으로 하였다가 1362년(공민왕 11년)부터 성균관으로 고쳐불렀다. 1392년 고려봉건국가가 망하고 서울에 조선봉건왕조국가가 선후 개성의 성균관은 그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나 그 이름만은 그대로 유지되였다. 고려시기 성균관에서는 학생들에게 봉건통치리념인 유교를 철저히 주입시키며 그들이 장차 봉건관리로서의 일정한 실무적자질을 갖출수 있도록 교육내용을 편성하였다.
고려시기 성균관에서 교육한 경전은 유교경전들이였다. 유교경전에 대한 학습이 끝나는 차제로 정치문제를 배워주었으며 률학(법학), 산학(수학), 서학(글씨-대전, 소전, 예서 등 8가지 글씨 쓰는법)을 전문별로 가르쳤다. 성균관으로 된 후 건물은 공민왕 16(1367)년에 고쳐지었는데 1592년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침략자들에 의하여 불타버렸다. 현재있는 건물은 그때 불에 탔던것을 원상태로 건설한것이다.
주체82(1992)년 5월 5일 성균관을 찾으신
력사적으로 볼 때 고려성균관은 과학문화발전에 기여한 수많은 인재들을 키워냈다.
고려시기 과학문화발전에 기여한 사람들가운데는 국자감-성균관교육을 거쳐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고려사》에 의하면 958년 과거제도가 처음 실시된 후 1392년까지의 기간에 약 1만 8천 400여명이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 가운데는 서희, 강감찬과 같은 애국명장들도 있고 리규보, 리색, 리승인, 정몽주, 권근, 맹사성과 같은 대학자들, 문익점과 같은 애국적관료 그리고 과학자, 발명가들도 있다.
고려성균관의 명륜당 앞마당 좌우에는 1,000년 묵은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있다.